장례를 치르고 2주 뒤, 우편함에 독촉장이 쌓였습니다
대전에 사는 정민 씨(가명)의 아버지는 작은 인쇄소를 하셨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일감이 줄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얼마나 어려운지는 자세히 몰랐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2주쯤 지나자 아버지 집 우편함에 캐피탈사와 카드사 봉투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합쳐 보니 확인되는 빚만 5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아버지 명의 재산은 오래된 화물차 한 대와 통장 잔고 몇백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주변에서는 다들 "상속포기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정민 씨도 그럴 생각으로 상속포기 심판청구서를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읽다가 한 줄에서 멈췄습니다.
> 1순위(자녀·배우자)가 상속을 포기하면 그 빚은 다음 순위로 넘어갑니다.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정민 씨와 여동생이 포기하면 여동생의 두 아이, 그러니까 조카들이 다음 상속인이 됩니다. 조카들까지 포기하면 그다음은 아버지의 형제인 삼촌들입니다. 한 사람이 빚을 피하려고 서류를 내면, 그 빚은 다음 사람 우편함으로 옮겨 갈 뿐이었습니다.
포기와 한정승인은 '빚이 어디로 가느냐'가 다릅니다
둘 다 "빚을 떠안지 않는" 방법처럼 들리지만 법적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 구분 | 상속포기 | 한정승인 |
|---|---|---|
| 상속인 지위 |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이 됨 | 상속인 지위 유지 |
| 빚을 갚는 범위 | 갚지 않음 | 물려받은 재산 한도에서만 (민법 제1028조) |
| 다음 순위 상속인 | 빚이 넘어감 | 넘어가지 않음 |
| 법원에 낼 것 | 포기 심판청구서 | 한정승인 심판청구서 + 상속재산목록 |
| 수리 후 할 일 | 사실상 없음 | 채권자 공고 → 배당변제 |
정민 씨 남매가 한정승인을 하면 두 사람이 상속인으로 남기 때문에 조카나 삼촌에게 빚이 가지 않습니다. 대신 남매는 아버지가 남긴 화물차와 예금으로 빚을 정리하는 절차를 직접 밟아야 합니다. 물려받은 재산보다 많은 빚은 자기 돈으로 갚을 필요가 없습니다.
기한 — "안 날"부터 3개월, 그리고 두 가지 예외
민법 제1019조제1항은 이렇게 정합니다.
> 상속인은 상속개시있음을 안 날로부터 3월내에 단순승인이나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할 수 있다.
이 기간 안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제1026조제2호에 따라 단순승인, 즉 빚까지 전부 물려받은 것으로 봅니다. 정민 씨는 사망 한 달 만에 서류를 준비했으니 일반 한정승인으로 충분했습니다.
3개월이 이미 지났다면 두 가지 길이 남아 있습니다.
- 특별한정승인(제1019조제3항): 빚이 재산보다 많다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3개월 안에 몰랐다면,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1년 뒤 갑자기 소장을 받은 경우입니다. 언제 어떻게 알게 됐는지 소명자료를 함께 냅니다.
- 미성년 상속인(제1019조제4항, 2022. 12. 13. 신설): 미성년일 때 빚 많은 상속이 단순승인됐다면, 성년이 된 뒤 채무초과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한정승인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정승인이라면 이미 처분한 재산의 목록과 가액도 같이 내야 합니다(제1030조제2항).
> ⚠️ 저희가 재현한 법률구조공단 원본 서식(1060)은 2019년 등록본이라 이 제4항이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서류뚝딱 서식에서는 '청구 유형' 선택지로 보완했습니다.
서식 작성 — 본문보다 [별지] 상속재산목록이 핵심입니다
한정승인은 "상속재산의 목록을 첨부하여" 신고해야 성립합니다(제1030조제1항). 청구서 본문은 인적사항 위주라 금방 쓰지만, 목록을 채우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1) 재산과 빚을 먼저 조회합니다. 정부24나 주민센터의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를 신청하면 금융거래(예금·대출·카드·보험), 토지, 자동차, 국세·지방세 체납을 한꺼번에 조회할 수 있습니다. 정민 씨는 이 결과에서 몰랐던 보증채무 하나를 더 찾았습니다. 2) 적극재산은 세 칸입니다. 원본 별지는 적극재산을 가. 부동산, 나. 유체동산, 다. 금전채권으로 나눕니다. 화물차는 유체동산에 차량번호·연식과 함께, 예금은 금전채권에 은행·잔액과 함께 적습니다. 3) 소극재산은 채권자마다 네 항목입니다. 채권자, 채무액, 채무의 종류, 발생일을 적습니다. 부채증명서를 떼면 그대로 옮길 수 있습니다. 4) 입증자료를 붙입니다. 원본 하단 안내대로 적극재산은 등기사항증명서·자동차등록원부·통장잔액증명서, 소극재산은 부채증명서·소장 사본 등을 첨부합니다.목록을 고의로 빠뜨리면 한정승인 뒤라도 단순승인으로 봅니다(제1026조제3호). 모르고 빠뜨린 재산은 나중에 목록을 고칠 수 있도록 법률구조공단에도 '상속재산목록 경정신청서' 서식(1060-1)이 따로 있습니다.
본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네 가지
가사소송규칙 제75조제1항은 한정승인·포기 신고서에 다음을 적도록 정합니다.
- 피상속인의 성명과 최후주소
- 피상속인과의 관계
-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
- 상속의 한정승인을 하는 뜻
서류뚝딱 서식의 청구인 칸에 '망인과의 관계'를 따로 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같은 조 제2항에 따라 신고인의 인감증명서를 붙여야 하므로, 청구인 전원이 인감도장을 찍습니다.
어디에, 얼마를 내나요
- 관할: 상속 사건은 상속 개시지의 가정법원이 맡고(가사소송법 제44조제1항제6호), 상속은 피상속인의 주소지에서 개시됩니다(민법 제998조). 결국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주민등록을 둔 곳의 가정법원입니다. 가정법원이 없는 지역은 지방법원·지원이 맡습니다.
- 인지: 라류 가사비송사건이라 청구 1건당 5,000원입니다(가사소송수수료규칙 제3조제1항). 실무상 청구인 수만큼 붙이는 경우가 많으니 접수 전에 확인하세요.
- 송달료: 접수 법원이 안내하는 금액을 예납합니다.
수리됐다고 끝이 아닙니다 — 5일 안에 공고
정민 씨가 가장 몰랐던 부분이 여기였습니다. 한 달쯤 뒤 법원에서 한정승인 신고를 수리한다는 심판서가 왔고, 남매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민법 제1032조제1항은 이렇게 정합니다.
> 한정승인자는 한정승인을 한 날로부터 5일내에 일반상속채권자와 유증받은 자에 대하여 한정승인의 사실과 일정한 기간 내에 그 채권 또는 수증을 신고할 것을 공고하여야 한다. 그 기간은 2월 이상이어야 한다.
그리고 알고 있는 채권자에게는 개별적으로 최고합니다. 공고기간이 끝나면 상속재산으로 채권액 비율에 따라 나눠 갚습니다(제1034조, 배당변제). 재산을 팔아야 하면 민사집행법에 따른 경매로 합니다(제1037조).
공고를 하지 않거나 먼저 연락해 온 채권자 한 곳에만 갚아서 다른 채권자가 못 받게 되면, 한정승인자가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할 수 있습니다(제1038조). 한정승인이 "서류 한 장 내면 끝"이 아닌 이유입니다.
정리 — 이런 분께 한정승인이 맞습니다
- 빚이 재산보다 많아 보이지만 정확한 규모를 아직 모를 때
- 상속포기를 하면 자녀·조카·형제에게 빚이 넘어가는 게 걱정될 때
- 3개월이 지나 빚을 알게 됐는데 몰랐던 데 중대한 과실이 없을 때(특별한정승인)
반대로 재산이 전혀 없고 가족 모두가 차례로 포기서를 낼 수 있다면 상속포기 심판청구서가 절차는 더 단순합니다.
서식 칸별 작성 안내와 원본(HWP)은 상속한정승인 심판청구서에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사망 후 처음 할 일은 사망신고서이고, 재산이 빚보다 많아 가족끼리 나눌 때는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씁니다.
한정승인은 재산 처분·배당 과정에서 세금과 채권자 분쟁이 생길 수 있고, 한 번 한 한정승인은 3개월 안에도 취소하지 못합니다(제1024조제1항). 채무가 크거나 공동상속인 사이 의견이 다르다면 변호사·법무사 또는 대한법률구조공단(국번 없이 132)에 먼저 상담하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