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하게 출력된 유언장 한 장
정숙 씨(가명, 74세)는 3년 전 무릎 수술을 받은 뒤로 둘째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병원에 데려가고 끼니를 챙기는 것도 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는 아파트는 딸에게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큰아들이 "어머니, 제가 깔끔하게 만들어 올게요" 하고 며칠 뒤 A4 한 장을 가져왔습니다. 회사에서 쓰는 문서처럼 반듯하게 출력된 유언장이었습니다. 정숙 씨는 맨 아래에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몇 달 뒤 동네 복지관 법률 상담에서 그 종이를 보여 주자 상담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건 자필증서 유언이 아닙니다. 지금 상태로는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정숙 씨가 서명도 하고 도장도 찍었는데 왜 안 되는 걸까요. 이유는 민법 조문 한 줄에 있습니다.
자필 유언장의 요건 5가지 — 하나라도 빠지면 무효
민법 제1066조제1항은 이렇게 정합니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하고 날인하여야 한다." 그리고 제1060조는 유언이 민법이 정한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효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못 박습니다.
| 요건 | 무엇을 | 흔히 빠뜨리는 경우 |
|---|---|---|
| ① 전문 자서 | 유언 내용 전부를 유언자가 직접 손으로 | 컴퓨터 출력, 자녀가 대신 써 줌 |
| ② 연월일 자서 | 작성한 연·월·일 | '2026년 10월'처럼 날짜 누락 |
| ③ 주소 자서 | 유언자의 주소 | 주소 칸을 비워 둠 |
| ④ 성명 자서 | 유언자의 이름 | — |
| ⑤ 날인 | 도장 | 서명만 하고 도장을 안 찍음 |
정숙 씨의 유언장은 ④와 ⑤만 갖췄습니다. 내용은 프린터가 썼고, 날짜와 주소도 출력된 글자였습니다. 그래서 '전문 자서'를 충족하지 못한 것입니다. 증인이 있었어도, 아들이 옆에서 지켜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필증서 유언에서 증인은 요건이 아닙니다. 요건은 오직 유언자 본인의 손글씨와 도장입니다.
글자를 넣거나 지우거나 고친 곳이 있다면 그것도 유언자가 직접 쓰고 그 자리에 날인해야 합니다(같은 조 제2항). 수정테이프로 지우고 덮어쓴 곳에 도장이 없으면 그 부분이 다툼거리가 됩니다. 고칠 곳이 많다면 처음부터 다시 쓰는 편이 낫습니다.
양식은 '보고 따라 쓰는 견본'일 뿐
인터넷에서 '유언장 양식'을 찾으면 한글 파일이 많이 나옵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도 「[서식 예]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증서」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구조는 단순합니다.
- 유언자 — 성명, 생년월일, 등록기준지, 주소, 전화
- 유언사항 — "1. 나는 다음과 같이 유언한다." 아래에 (1) 재산을 누구에게 줄지, (2) 유언집행자를 누구로 할지
- 작성일자 — 서기 ○○○○년 ○월 ○일
- 유언자 성명 (인)
중요한 것은 이 파일을 채워서 인쇄하는 순간 자필증서가 아니게 된다는 점입니다. 양식은 무엇을 어떤 순서로 쓸지 알려 주는 견본이고, 실제 유언장은 빈 종이에 손으로 옮겨 써야 합니다. 서류뚝딱의 유언증서 페이지도 그래서 입력한 내용을 PDF로 받으면 '따라 쓰기용 견본'이라는 표시가 찍히게 만들었습니다.
생년월일·등록기준지·전화번호는 서식례에 있는 칸이지만 법정 요건은 아닙니다.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되니 쓰는 것이 좋습니다.
재산은 '특정'해서 써야 쓸모가 있다
정숙 씨가 다시 쓴 유언장의 핵심 문장은 이랬습니다.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 ○○번지 ○○아파트 ○○동 ○○호(전용 ○○㎡)는 차녀 ○○○(19○○년 ○월 ○일생)에게 유증한다. 이 유증은 나의 사망으로 인하여 효력이 발생한다.
'집은 딸에게'라고만 쓰면 나중에 어떤 집인지, 어느 딸인지 다툼이 생기고 등기에도 쓰기 어렵습니다. 부동산은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적힌 소재지·지번·면적대로, 예금은 은행과 계좌번호로, 받을 사람은 성명과 생년월일로 특정합니다.
법률구조공단 서식례에는 '증여(사인증여)'와 '유증'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둘 다 사망으로 효력이 생기지만, 유증은 유언자 혼자 하는 단독행위이고 사인증여는 받을 사람과의 계약입니다(민법 제562조). 유언장 한 장으로 혼자 정하려면 '유증한다'로 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유언집행자는 꼭 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정이 없으면 상속인이 유언집행자가 됩니다(제1095조). 다만 제한능력자와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은 유언집행자가 될 수 없습니다(제1098조).
유언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 — 유류분
정숙 씨에게는 자녀가 둘입니다. 아파트를 딸에게 모두 주면 아들의 몫은 어떻게 될까요. 민법은 유언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최소한의 몫, 유류분을 정해 두었습니다(제1112조).
| 상속인 | 유류분 |
|---|---|
| 자녀 등 직계비속 | 법정상속분의 1/2 |
| 배우자 | 법정상속분의 1/2 |
| 부모 등 직계존속 | 법정상속분의 1/3 |
| 형제자매 | 없음 (2024. 9. 20. 삭제) |
2026년 3월 17일 시행된 민법 개정으로, 이날 이후 상속이 개시되면 유류분이 부족한 사람은 재산 자체가 아니라 그 가액(돈)의 지급을 청구합니다(제1115조제1항, 부칙 제3조). 아파트 지분을 나눠 갖는 대신 돈으로 정리된다는 뜻입니다.
같은 개정에서 눈여겨볼 조항이 하나 더 있습니다.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거나 피상속인에게 중대한 범죄행위·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상속인의 상속권을 없애려면,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으로 그 뜻을 밝히고 유언집행자가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을 청구해야 합니다(제1004조의2제1항). 자필 유언장에 '○○에게는 상속권을 박탈한다'고 써도 그 효과는 생기지 않습니다.
자필 유언과 공증 유언, 무엇을 고를까
민법이 인정하는 유언 방식은 다섯 가지뿐입니다.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입니다(제1065조).
| 구분 | 자필증서 (제1066조) | 공정증서 (제1068조) |
|---|---|---|
| 작성 | 유언자 혼자 손으로 | 증인 2명 + 공증인 앞에서 말로, 공증인이 받아 적음 |
| 비용 | 없음 | 공증 수수료 (재산 가액에 따라 다름) |
| 무효 위험 | 요건 하나만 빠져도 무효 | 방식 다툼이 적음 |
| 분실·위조 | 보관에 따라 위험 | 공증사무소에 원본 보관 |
| 사망 후 검인 | 필요 (제1091조제1항) | 불필요 (같은 조 제2항) |
| 상속권 상실 의사표시 | 불가 | 가능 (제1004조의2) |
유언으로 이익을 받을 사람과 그 배우자·직계혈족, 미성년자 등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제1072조). 정숙 씨의 경우 딸과 사위는 증인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정숙 씨는 일단 자필로 다시 쓰고, 큰아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공증도 받아 두기로 했습니다. 가족 간에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자필 유언장만으로 끝내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남은 가족이 할 일 — 검인
유언자가 세상을 떠나면 유언장을 보관하거나 발견한 사람은 지체 없이 가정법원에 제출해 검인을 청구해야 합니다(제1091조제1항). 관할은 상속 개시지, 곧 돌아가신 분의 마지막 주소지 가정법원입니다(가사소송법 제44조제1항제7호). 수수료는 1건당 5,000원에 송달료가 붙습니다(가사소송수수료규칙 제3조제1항).
봉투에 봉인돼 있다면 뜯지 말고 그대로 내야 합니다. 법원이 기일을 정해 상속인을 부르고 그 자리에서 개봉합니다(제1092조, 가사소송규칙 제86조제2항). 유언장을 숨기거나 찢어 버린 상속인은 상속인이 될 수 없다는 점도 기억하세요(제1004조제5호).
검인은 유언장이 어떤 상태로 있었는지 확인하고 보존하는 절차입니다. 유언이 유효한지 판단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유언장대로 등기하거나 예금을 찾을 때, 효력을 두고 다툼이 있으면 별도로 법원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검인 청구서는 법률구조공단 서식례 1067 「유언증서 검인신청서」를 유언증서 페이지에서 함께 받을 수 있습니다.
한 장으로 정리
- 전부 손으로 — 내용·연월일·주소·성명을 유언자가 직접 쓰고 도장 (민법 제1066조)
- 컴퓨터·대필·인쇄본에 서명만 = 무효 — 양식은 보고 따라 쓰는 견본
- 고친 곳도 자필 + 날인, 많으면 새로 쓰기
- 재산과 사람을 특정 — 등기부 표시, 계좌번호, 성명·생년월일
- 유류분은 못 막는다 — 자녀·배우자 1/2, 부모 1/3, 형제자매는 없음. 2026. 3. 17. 이후 상속은 돈으로 지급
- 상속권 박탈은 공정증서 유언으로만
- 다툼이 예상되면 공증 유언 병행
- 사망 후 보관자·발견자는 지체 없이 가정법원 검인
견본 화면과 칸별 작성 요령, 법률구조공단 서식례 원본(자필증서 유언증서·유언증서 검인신청서)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증서 페이지에 있습니다. 상속이 시작된 뒤의 절차는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로 재산을 조회하고, 상속재산분할협의서나 상속포기로 이어집니다.
여기 적은 내용은 민법·가사소송법 원문과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식례를 확인해 정리한 일반적인 안내입니다. 유언 내용이 가족 간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거나 재산 규모가 크다면, 유언장을 쓰기 전에 대한법률구조공단(국번없이 132)이나 변호사와 상담하시고, 상속세가 걱정된다면 세무사의 검토도 받아 보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