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산재 안 해요"
성호 씨(가명)는 식품공장 포장라인에서 일합니다. 8월 초, 15kg짜리 완제품 박스를 파렛트에 올리다가 바닥에 흘러 있던 세척수를 밟고 뒤로 넘어졌습니다.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었고, 손목이 꺾였습니다.
그날 저녁 응급실에서 찍은 사진에 골절이 보였습니다. 최소 6주는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성호 씨는 반장에게 산재 처리를 부탁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 "우리 회사는 산재 안 해. 그거 하면 보험료 올라가고 감독 나와. 그냥 공상으로 처리하자."
성호 씨는 그 말을 산재 신청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알아들었습니다. 회사가 도장을 안 찍어주면 신청 자체가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두 달 동안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았고, 깁스를 푼 뒤에야 노무사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거기서 들은 첫마디가 이거였습니다. "사업주 도장 필요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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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오해: 사업주 날인란은 서식에 없습니다
요양급여신청서 원본을 펼쳐 보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앞면 맨 아래 서명란은 신청인과 대리인 두 칸뿐입니다. 사업주가 서명하는 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대신 뒷면 안내사항 ①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 ①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제20조제2항에 따라 요양급여신청서가 접수되면 보험가입자(사업주)에게 알리고 보험가입자 의견을 확인하여 신청서를 처리합니다.
순서를 보세요. 접수가 먼저이고, 사업주에게 알리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사업주 동의는 접수 요건이 아니라, 공단이 접수 후에 의견을 들어보는 절차입니다. 사업주가 "그런 사고 없었다"고 해도 공단이 조사해서 판단합니다. 사업주 의견이 결정 그 자체는 아닙니다.
산재보험은 회사가 근로자에게 베푸는 복지가 아니라, 사업주가 보험료를 내고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국가 보험입니다. 신청 주체는 회사가 아니라 다친 사람 본인입니다.
두 번째 기준: 4일
요양급여는 업무상 재해로 다치거나 병을 얻어 요양기간이 4일 이상일 때 나옵니다. 3일 안에 나을 정도라면 산재보험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업주가 직접 보상합니다.
여기서 요양급여의 성격을 짚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요양급여는 치료비입니다. 현금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산재보험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는 현물급여이고, 승인되면 그때까지 본인이 낸 치료비도 정산됩니다.
일을 못 한 기간의 임금은 요양급여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건 휴업급여(평균임금의 70%)로 따로 청구합니다. 치료가 끝난 뒤 후유증이 남으면 장해급여를 또 따로 청구합니다. 요양급여 신청은 이 모든 것의 입구입니다.
세 번째: 신청서는 두 장이 한 세트입니다
원본 파일을 열어보면 서식이 두 개 들어 있습니다.
| 서식 | 이름 | 누가 쓰나 |
|---|---|---|
| 별지 제2호 | 요양급여신청서 | 재해자 본인 |
| 별지 제3호 | 요양급여신청 소견서 | 의료기관(의사) |
신청서 앞면 아래에 "※ 첨부서류: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신청 소견서(별지 제3호 서식)"라고 인쇄되어 있습니다. 소견서는 재해자가 쓰는 서류가 아닙니다. 상병명과 상병코드(KCD), 예상 입원·통원 기간, 수술 여부, 기존 질환 유무까지 의사가 적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갈 때 "산재로 신청하려고 합니다"라고 미리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료기록이 산재 기준으로 정리되고, 소견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병원이 신청서 접수까지 대신 해주는데, 그때 쓰는 것이 앞면 아래쪽의 위임(동의)장입니다. 본인이 직접 내거나 온라인으로 신청한다면 그 칸은 비워 두면 됩니다.
네 번째: 승인을 가르는 칸은 하나입니다
신청서에서 가장 중요한 칸은 재해 발생 경위입니다. 인적사항은 틀리면 고치면 되지만, 이 칸은 다시 쓴다고 사실이 바뀌지 않습니다.
서식이 친절하게도 무엇을 쓸지 알려 줍니다.
> ※ 작성방식: 어디에서(구체적 장소), 무엇을 하기 위해(작업내용, 목적), 무엇을 사용하여(작업도구, 취급물질), 어떻게 하다가(경위, 동작, 움직임), 어떤 이유 때문에 어떻게 재해를 당하였는지 작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별지사용 가능)
다섯 가지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한 문단에 다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쓰면 보완 요구가 옵니다
> 작업 중 넘어져 손목을 다쳤음.
틀린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으로는 업무 때문에 다쳤는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어디서 넘어졌는지, 무슨 일을 하다가 넘어졌는지, 왜 미끄러졌는지가 전부 빠져 있습니다. 휴게실에서 넘어진 것인지 작업대에서 넘어진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쓰면 됩니다
> 동탄식품 화성2공장 2층 포장라인에서(어디에서) 완제품 박스(약 15kg)를 파렛트에 적재하려고(무엇을 하기 위해) 대차에서 박스를 들어 올리던 중(무엇을 사용하여 / 어떻게 하다가), 바닥에 흘러 있던 세척수에 오른발이 미끄러지면서(어떤 이유 때문에) 몸이 뒤로 넘어져 오른쪽 손목으로 바닥을 짚었습니다(어떻게 재해를 당하였는지).
같은 사고인데 읽는 사람이 장면을 그릴 수 있습니다. 칸이 부족하면 별지를 써도 됩니다. 길다고 감점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뒷면 안내사항 ②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 ② 재해경위 등 주요 사항을 사실과 달리 기재하여 보험급여를 지급받은 경우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84조에 따라 부당이득 징수 등의 불이익 처분을 받게 되니 사실대로 구체적으로 기재하여야 합니다.
유리하게 각색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실을 빠짐없이 적으라는 뜻입니다.
다섯 번째: 객관적 자료가 있으면 같이 내세요
신청서에는 예/아니오로 답하는 문항이 세 개 있습니다.
- 교통사고·음주·폭행 등으로 경찰서에 신고된 사실이 있는지
- 119 또는 소방서에 구조구급·재난 신고된 사실이 있는지
- 자동차 보험사에 사고를 신고한 사실이 있는지
하나라도 "예"라면, 그 기록이 재해를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자료입니다. 119 구급활동일지에는 출동 시각·장소·환자 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경찰 사고사실확인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내면 조사가 훨씬 빨라집니다.
목격자란도 비워 두지 마세요. 같은 조 동료의 이름과 연락처, 재해자와의 관계를 적으면 됩니다. 목격자도 없고 신고 이력도 없는데 자료를 아무것도 내지 않으면, 남는 건 본인 진술뿐입니다. 이전에 진료받은 의료기관란도 중요합니다. 사고 당일 응급실에 갔다가 다음 날 정형외과로 옮겼다면, 그 응급실을 반드시 적어야 합니다. 최초 진료기록은 재해 시점과 상병을 확인하는 자료입니다.여섯 번째: 뒷면을 넘기지 마세요
앞면만 채우고 내는 사람이 많은데, 뒷면에도 채울 칸이 있습니다.
① 다른 보상 수령 여부 — 같은 재해로 민법이나 다른 법령에 따라 보상금·배상금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묻습니다. 가해자에게 받은 합의금, 자동차보험 보상금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예"라면 수령일자·금액·지급한 사람과 합의서·영수증을 함께 냅니다. ② [필수] 민감정보 수집·이용 동의 — 여기에 "동의함"을 표시해야 공단이 건강검진기록과 진료내역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으면 그 서류들을 본인이 전부 모아서 내야 합니다. 아래쪽 [선택] 동의 세 가지(부가서비스 홍보·재활서비스·직장복귀지원)는 동의하지 않아도 신청에 아무 불이익이 없습니다.마지막 줄 "근로복지공단 ○○지역본부(지사)장 귀하"에는 사업장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사를 적습니다.
앞면 흐름 정리
| 순서 | 칸 | 핵심 |
|---|---|---|
| 1 | 신청 구분 | 업무상 사고 / 업무상 질병 / 출퇴근 재해 중 하나 |
| 2 | 재해자 인적사항 | 재해 발생 일시는 시·분까지 |
| 3 | 근로자유형 | 배달·대리운전 등은 대체로 '노무제공자' |
| 4 | 사업장관리번호 | 모르면 공단 홈페이지 사업장명 검색 또는 1588-0075 |
| 5 | 재해 발생 경위 | 다섯 요소를 순서대로 |
| 6 | 신고 이력 3문항 | "예"면 구급활동일지·사고사실확인원 첨부 |
| 7 | 목격자·이전 진료 병원 | 비워 두지 말 것 |
| 8 | 위임(동의)장 | 병원이 대신 낼 때만 |
| 9 | 신청인 서명 | 사업주 날인란은 없음 |
제출은 고용·산재보험 토탈서비스(total.comwel.or.kr) 온라인, 지사 방문, 우편, 병원 대행 중 편한 방법으로 하면 됩니다. 진행 상황도 토탈서비스에서 휴대폰 인증으로 직접 조회할 수 있습니다.
처리기간 7일은 사고 기준입니다
서식 오른쪽 위에 처리기간이 7일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건 업무상 사고 기준입니다.
업무상 질병은 다릅니다. 근골격계질환·소음성난청·뇌심혈관질환 같은 질병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해서 몇 달이 걸립니다. 신청 구분을 고를 때 이 차이를 알고 고르는 편이 좋습니다.
자주 나오는 사고 5가지
- 경위를 한 줄로 적는다 — "작업 중 다쳤음"은 거의 예외 없이 보완 요구를 받습니다.
- 소견서를 빠뜨린다 — 신청서만 내면 상병명과 요양기간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 사업장관리번호를 잘못 적는다 — 다른 사업장 건으로 접수돼 확인에 시간이 걸립니다.
- 출퇴근 재해에서 경로를 벗어난다 —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이어야 합니다. 개인 볼일로 들른 구간(일탈·중단)에서 다치면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 자동차보험과 겹친다 — 같은 치료비를 이중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산재로 처리하면 과실 비율과 관계없이 치료비가 나온다는 점이 다릅니다.
3년이 지나면 끝입니다
요양급여 청구권은 3년이 지나면 소멸시효로 사라집니다. 성호 씨처럼 "회사가 안 해준다더라"는 말을 믿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 기간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갑니다.
성호 씨는 결국 두 달 뒤에 직접 신청했고, 승인을 받았습니다. 건강보험으로 냈던 치료비도 정산됐습니다. 다만 두 달 동안의 휴업급여를 받기 위해 재해 경위를 다시 입증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사고 직후에 냈다면 훨씬 간단했을 일입니다.
회사가 도장을 찍어주지 않아도, 회사가 반대해도, 신청서는 접수됩니다. 그 사실 하나만 알아도 두 달을 아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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